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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좋았던 펜션이였습니다. 잘 놀다가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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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라이프 24-03-21 19:03 6회 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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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아늑하고 오붓했습니다.
깔끔하고 좋네요 ^^
흑요정 신비술사 루에시는 내가 베푼 자비, 즉 생명과 자유를 보장하겠노라는 스타토토사이트 곧장 전향을 맹세했다. 과연 ‘맹세의 컬트’ 출신답게 맹세에 능한 여자였다.
하기야 조금만 협조하면 자기 자신은 물론이요 포악하지만 소중한 언니, 그리고 뜻하지 롤토토사이트 살아남은 수컷 혈족 둘까지 패키지로 살릴 수 있는 기회가 아닌가. 덤으로 전부터 벼르고 있던 선지자 및 그 졸개들에게 엿도 먹일 수 있고. 나 같아도 혹하겠다.
의욕을 얻은 루에시는 마찬가지로 포로로 잡힌 두 혈족을 설득-아니, 강압하여 우리를 돕도록 했다. 롤베팅 그 수컷 노예들은 가문의 고귀한 아가씨가 설파한 뜻에 감화되어 우리에게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사실 두 흑요정 사내는 제대로 된 전사가 아니라 키술리오라 가문의 일개 가복들에 불과했다. 당연히 실질적인 전투력은 형편없었지만 지저 출신인 만큼 밤눈이 밝고 마기에도 익숙한지라 경계차원에서도 시야가 거의 줄어들지 않았다. 내비게이션이나 미니맵 정도로는 써먹을 수 있는 것이다.
밀라놀어는 물론이고 슈파흐트어 패치도 되어 있지 않아서 사용이 조금 불편하긴 한데……. 원래 기계라는 건 적당히 두들겨 패다 보면 제 기능을 발휘하는 법이다.
전령 셋을 빼고 흑요정 셋을 더해 여전히 열두 명인 별동대는 루에시의 안내를 따라 부지런히 움직였다.
루에시는 인체에 마기가 극히 해롭다는 사실도, 그에 따라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는 사실도 명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따로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우리가 마기에 질식하게 된다면 자신의 목이 제일 먼저 날라는 걸 똑똑히 알고 있는 것이다.
그 절박함이 연료가 된 걸까, 아니면 이전부터 이 같은 기회를 준비한 걸까. 루에시는 전향을 맹세한 지 만 하루 만에 흑요정 길잡이 ‘우쿠루트’를, 그리고 차원핵을 찾아냈다.
“흐음.”
나는 검회색 노이즈가 흐르는 절벽 위, 부자연스럽게 일렁이는 롤배팅 속에 몸을 숨긴 채 미간을 좁혔다.
루에시가 걸어준 주문-‘흑요정의 투사(投射)’는 마기의 안개 속에서도 꽤 양호한 시야를 제공했다.
수준 낮은 환영 마법 특유의 뒤틀린 거리감 그리고 마법에 걸린 것 그 자체로 인한 위화감은 별로 달갑지 않지만, 한동안 꽉 막혀 있던 시야가 넓게 트이니 절로 속이 후련해지는 기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미간이 좀처럼 펴지지 않는 건 훤해진 시야에 들어온 광경이 예상한 바와 조금 달라서였다.
“저게…… 차원핵이란 말이지?”
“맞아-아니, 맞아요. 혹시 뭔가 이상한 점이라도 있나요?”
이 기특한 흑요정 아가씨는 지상의 문명인들 편에 선 지 하루 만에 예의를 터득했다. 스타베팅 낯과 몸가짐으로 연신 내 눈치를 살피는 모습을 보니, 어리석은 영민을 깨우치는 일을 업으로 삼는 계몽 영주로서 뿌듯할 따름이다.
난 태연한 어조로 답했다.
“내가 아는 것과는 조금 달라서.”
“다르다니, 차원핵이요?”
“그래. 차원핵은 이 공간의…… ‘재료’로 쓰인 영혼 아니었나?”
내가 왕도에서 경험한 바를 토대로 건넨 질문에, 루에시는 알 만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저것도 영혼이랍니다. 당신께서 낯설게 여기는 건 일종의 가공을 거친 탓이겠죠.”
“가공?”
“암흑기사가 선지자에게 일러준 여러 비법 중 하나라고 알고 있어요. 경계차원의 롤드컵토토 된 영혼을, 단순히 차원의 핵으로 삼는 게 아니라 차원 통제를 위한 도구로 활용한다고 했던가…….”
그녀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는 한편 다시금 저 멀리 차원핵을 내려다보았다.
이전까지 내가 보고 겪은 차원핵들은 이면세계-아니, 경계차원을 만드느라 희생된 자들의 영혼이었다. 롤토토 만큼 영혼주술사인 이오피야가 쉽게 추적할 수 있었고, 심지어는 녀석을 통해 대화도 나눌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저 멀리 보이는 차원핵은 도저히 대화가 가능할 것 같지 않다. 애초에 인간의 형상도 아니잖아.
굳이 묘사를 하자면, 차원핵은 커다란 정육면체 형태의 부정형 덩어리였다. 탁한 회백색 젤리 같은 물질이 기분 나쁘게 탱글거리는 모양새다.
“…….”
무의식중에 고개를 쳐드는 거부감에 캐물어 보니, 과연 저 덩어리는 경계차원을 형성하느라 희생된 병사 수십 명의 영혼이 하나로 ‘비벼진’ 산물이었다.
“……역겹군. 원상태로 되돌릴 방법은 없고?”
“글쎄요, 저는 잘……. 그리고 암흑군주의 사냥개가 선지자나 그 부하들에게 그런 것까지 가르쳤을 것 같지는 않네요.”
바로 그때 영혼의 젤리-아니, 차원핵 앞에 서 있던 인영이 차원핵 안으로 양손을 찔러 넣었다.
머리를 밤송이처럼 깎은, 땅딸막한 키의 늙은이. 요정이라기엔 너무 추레한 저놈이 바로 길잡이 우쿠루트였다.
뿌루구루르륵.
거리를 감안하면 그럴 리가 없지만, 차원핵이 찢기고 구겨지며 내는 불쾌한 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스타토토 같다. 얼핏 보니 우쿠루트는 젤라틴 덩어리 같은 차원핵 안에 집어넣은 두 손으로 무언가를 주물럭거리고 있었다. 지저분한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몸짓이다.
뭔가 수작을 부리는 것 같은데, 정확히 뭘 하는 건지는 루에시도 모른단다.
“…….”
이 녀석, 가슴만 크지 별로 쓸모가 없구만. 아무래도 너무 과한 대가를 약속해 버린 것 같은데……. 나중에 조건을 약간 조정해야겠다.
차원핵으로 의문의 수작을 부리고 있는 것과는 별개로, 우쿠루트는 이곳의 그린스킨과 기타 괴물들을 통제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일단 인근에 바글대는 그린스킨과 다수의 하급 거인들부터가 저놈 하나를 지키기 위한 포진을 취하고 있지 않겠나. 그 호위 태세가 썩 절묘해서, 난 저놈들이 우쿠루트의 외모를 위장으로 써먹으려는 게 아닐까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흑요정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왜소하고 못생긴 놈이라, 그린스킨 무리 속에 숨으면 홉고블린 따위로 착각하기 십상인 것이다.
다행히 그런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동족 혐오 같은 건지, 우쿠루트는 그린스킨을 비롯한 괴물들이 꺼림칙하다는양 애써 놈들과의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명령을 내릴 때도 중무장한 거인 하나를 스피커 삼아 무어라 말을 전달할 뿐이었다.
절벽 아래 골짜기가 그린스킨들로 가득할 만큼 병력이 많은 상황인데 지휘체계는 허술하기 짝이 없다. 그러니 통제의 수준이 높을 수가 없나.
중무장 거인이 무어라 외칠 때마다 여러 무리가 이리저리 움직이긴 했지만, 아무리 봐도 정교한 운용과는 거리가 멀었다. 방금도 거인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우르르 몰려갔던 그린스킨 무리가 헛되이 바윗돌을 한 바퀴 돌더니 제자리로 돌아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런 무리가 열에 예닐곱은 되었다.
게다가 괴물들로 구성된 군대에 보급이 제대로 이루어질 리 없어서, 징그러울 정도로 바글대는 괴물들 사이에서는 팀킬이 쉬지 않고 일어났다. 고블린이 고블린을 먹고, 오크가 고블린을 먹고, 오우거가 고블린을 먹고, 외눈거인이 고블린을 먹는 것이다.
……어. 혹시 애초부터 저럴 계획으로 고블린을 끌고 온 건가?
하긴, 대다수 고블린의 저열한 기량을 고려하면 전투원으로 운용하느니 군량으로 써먹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자체 추진이 가능한 데다 달마다 새끼를 까대니, 썩 효율적인 보급 체계가 아닐까.
“선생님, 야한 생각하죠?”
“……갑자기 무슨 말입니까, 그게. 저를 뭐로 보시고.”
“아녜요? 이상하네. 누가 봐도 쓸데없는 생각 하는 표정이었는데.”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유프리아가 짐짓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대답 대신 떫은 표정을 짓자, 홀덤사이트 혀를 빼쭉 내밀더니 뒤쪽을 턱짓했다.
“가요. 본대가 움직일 모양이에요.”
청년기사 도리스를 중심으로 별동대원들이 둥글게 모여들었다.
도리스는 시퍼런 막에 뒤덮인 동공을 이리저리 굴려대는 한편 ‘원견’ 주문을 유지하느라 연신 수인을 짚어댔다. 얼핏 정신병자 같은 꼴이었는데, 주변을 돌아보니 그렇게 생각하는 게 나뿐만은 아닌 것 같았다.
팔짱을 낀 채 무슨 돌팔이 보듯 미심쩍은 표정을 짓고 있던 기리온이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다그쳤다.
“본대가 뭘 어떻게 움직인다는 거야. 전 병력이 움직인다고?”
“어, 그게. 시야가 원체 좁아서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렵고……. 적어도 절반 온라인홀덤 움직이는 것 같습니다.”
“덜 떨어진 소리하고 있네. 주둔지 분위기는 어떤지, 마법사와 성직자들은 어쩌고 있는지, 방벽 보강은 멈췄는지, 그런 걸 확인하라고.”
기리온의 다그침과 도리스의 더듬거리는 대답이 서너 차례 오갔다. 가만히 들어보니 몇 시간 전에 보낸 전령들이 임무를 훌륭히 완수한 게 분명하다.
전령 임무를 수행한 건 세 명으로, 콜마로스 가문의 기사 오코셔 경과 테릭스 홀덤사이트 워록 노먼 그리고 용병 라이지로 위장한 시모스였다. 흑요정 검귀 카리시도 그쪽에 맡겼다.
지나온 길을 되짚어 돌아갔을 뿐이지만, 환경이 환경인 데다 꽤 위험한 짐덩이도 하나 떠맡았으니 온라인홀덤 쉬운 일은 아니었을 거다. 그래도 다들 기량이 기량인 만큼 무사히 도착했나 보다.
내가 본대로 전령을 보낸 건, 당연히 작전을 제안하기 위해서였다.
본대의 역공을 통해 저 아래 바글바글한 그린스킨들의 주의를 돌리고, 그 틈에 별동대가 파고들어 우쿠루트를 잡는다. 아주 간단하고 기본적인 참수 작전이다.
며칠간 이어진 전투로 피로도가 만만치 않게 쌓였으리라는 건 나도 잘 안다. 하지만 별다른 선택지가 없다. 중간계로 돌아가는 차원문도 결국 차원핵을 통해 여는 것이니, 본대 역시 탈출을 하자면 움직여야만 한다.
“그럼, 우리도 이제 준비하죠.”
나는 별동대원들을 쭉 돌아보며 슬쩍 미소를 지었다.
“이 지긋지긋한 곳을 나갑시다.”
결의 어린 눈빛들이 썩 만족스럽다.
***
검술교사 루도의 제안으로 시작된 작전은 급히 계획된 만큼 정교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본대든 별동대든 주어진 건 대강의 개념과 궁극적인 목표가 전부였고, 실질적인 기동과 전투에 관한 건 모두 임의에 맡겼을 따름이다.
하지만 제반 상황을 고려하면 썩 적절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었다. 마기의 침습으로 인한 시간제한이 있으니 신속성은 그야말로 생명이었고, 시야가 좁은 전장 형편 상 소부대 지휘자들이 재량이 얻는 편이 나았다.
토벌대장인 오스는 전령의 보고를 듣자마자 전 대원을 다그쳐 출진을 준비했다. 현 상황과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가감 없이 전파하여 공격만이 살길이라는 사실을 모두에게 주지시킨 건 물론이다.
그렇게 300명 안팎의 본대는 마지막 힘을 쥐어짜 탁상지의 주둔지에서 쏟아져 나왔다.
생존을 위해 필사의 기세를 쥐어짜긴 했지만, 중과부적인 전황과 시야가 제한된 형편은 그대로였다. 그러니 상대가 이 같은 반격을 예견하여 방비를 해두었거나, 예견하지 못했더라도 민활히 대응한다면 본대는 큰 희생을 치를 터였다.
하지만 그린스킨들, 정확히 말하면 그들을 이끄는 흑요정 우쿠루트에게는 그럴 만한 능력이 없었다.
“길잡이. 인간들 미쳐 날뛴다, 명령을 내려라.”
‘강철거인’이 우쿠루트를 내려다보며 숫제 윽박을 질러댔다. 훌륭한 품질의 맞춤 갑주를 걸쳐 회색빛으로 녹슨 피부를 가린 거인은 키가 5미터도 넘었고, 거친 목소리는 산사태처럼 우렁우렁 울렸다.
평범한 인간이라면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릴 만큼 위압적인 형상이었으나, 늙고 추레한 흑요정은 거인 쪽으로 눈길조차 주지 않고 빽 소리쳤다.
“오크 놈들을 보내서 처리해!”
“오크는 상대가 안 된다. 인간들은 강력하다.”
“알아서 해! 네 못생긴 사촌들을 보내든가! 이 몸은 그런 일에 신경 쓸 시간이 없다고 했잖아!”
“내가 알아서 한다고 말했다. 가서 모조리 밟아 죽이겠다.”
회백색 덩어리를 이리저리 주무르던 우쿠루트가 휙 고개를 돌리며 짜증을 쏟아냈다.
“이 멍청한 골렘 같은 게. 네 임무는 나를, 그리고 차원핵을 지키는 것이다!”
“멍청이? 그건 너다! 네가 내 일을 방해하고 있다.”
“닥쳐, 닥치라고! 말대꾸하지 마라! 이 차원의 책임자는 네가 아니라 나란 말이다!”
추한 몰골의 흑요정이 욕설을 섞어 몇 마디 더 쏘아붙이자, 강철거인의 시뻘건 안광이 가만히 일렁였다. 저 늙은 벌레를 손바닥으로 눌러버릴까 고민하던 것도 잠시, 거인은 지축을 울리는 걸음과 함께 돌아섰다.
“제기랄, 제기랄.”
뿌굴, 뿌구루룩.
강철거인을 쫓아낸 우쿠루트는 신경질을 내면서도 다시금 차원핵을 만지작거렸다.
신비로운 마도구를 이용해 빚어낸 차원핵은 경계차원 전체를 조종하는 고삐 내지는 타륜과도 같은 물건이다. 따라서 차원 마법이나 마도구에 능숙한 자라면 이 차원핵을 이용해 차원 전체를 손금 보듯 들여다볼 수도 있고, 원하는 대로 지형을 바꿀 수도 있으며, 심지어는 가득 차오른 마력을 이용해 특별한 권능을 부릴 수도 있다.
하지만 마도구의 원주인인 아킬렘누르나 그를 통해 사용법을 익힌 선지자라면 모를까, 일개 길잡이에 불과한 우쿠루트가 그런 고등한 수를 쓸 수는 없었다. 애초에 그의 역할은 병력을 거느리고 여러 경계차원을 오가며 순찰하거나, 때때로 불안정 요소를 제거하는 등 자잘한 일들뿐이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그는 어깨 너머로 익힌 대로 차원핵을 이리저리 조작하려 애썼다. 그러나 차원핵은 불쾌한 소리를 흘리며 헛되이 흔들릴 따름이었다.
“으, 빌어먹을.”
길잡이 우쿠루트는 궁지에 몰린 상태였다.
선지자가 그를 이리로 파견한 목적은 계획보다 빠르게 전개된 대규모 경계차원에 대한 조사, 그리고 중요한 인간 협력자들이 희생된 사정을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그간의 경험에 비추어 보건대 별로 어려울 것도 없는 일이었다. 스스로를 과신한 건 아니다. 거느린 군대의 강대함과 부관 삼아 데려온 흑요정들의 유능함을 믿었을 따름이다.
그런데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차원을 넘는 중에 군대를 얼마간 흘렸지만, 그야 늘 있는 일이 아닌가. 새로 생긴 경계차원에 웬 인간들이 갇혀 있는 것도 흔히 겪은 일이고. 그 수효가 꽤 많기는 해도 그래봐야 거미줄에 걸린 날파리 신세. 여느 때처럼 그린스킨들을 동원하면 금방 해결될 터였다.
오산이었다.
거느린 병력의 절반 이상을 쉼 없이 밀어 넣었지만 인간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 과정에서 거미조련사와 그에게 속한 거미들이 모조리 희생되었고, 이제는 키술리오라 가문의 강습대마저 통째로 실종되어 버렸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물론 마지막이었다.
“제발, 카리시 양.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겐가?”
키술리오라의 카리시. 빌라리의 현신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강력하고 아름다운 흑요정. 그 고귀한 아가씨를 우쿠루트는 근 50년 전부터 동경해 왔다.
지저에서는 감히 눈도 마주칠 수 없을 정도의 신분격차가 존재했으나, 맹세의 컬트에 든 이후로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그는 카리시가 포악한 성정을 드러내기 전에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동료 길잡이들-우쿠루트와 비슷하게 천한 출신인 사내들이다-사이에서 그녀를 변호했고, 선지자를 설득한 끝에 휘하에 두었다.
카리시는 그 모든 사정을 알고도 우쿠루트에 대한 혐오를 숨기지 않았다. 별로 상관은 없었다. 열 번 찍어 넘어가지 않는 나무는 존재하지 않는 법. 그녀는 조만간 그를 반려로 맞이하게 될 터였다.
“카리시, 카리시…….”
200년 넘게 짝을 얻어본 적 없는 자의 갈망은 깊고도 깊었다. 어느 정도였느냐면, 마법에 대한 재능이라곤 조금도 없는 그에게 잠시나마 영감(靈感) 비슷한 것이 피어날 정도였다.
부르르르.
“어?”
좀처럼 답이 없던 차원핵이 드디어 권능을 허여한 것이다. 허락된 능력은 그 기이하고도 강력한 물질이 지닌 바의 일부에 불과했으나, 늙고 추한 흑요정에게는 충분하다 못해 넘치는 힘이었다.
“아, 아학.”
우쿠루트는 경계차원 전체가 제 신체의 일부가 된 듯한 감각에 사로잡혔다. 릿스터 북산 일대가, 십수 개의 봉우리와 능선 그리고 골짜기가 품 안으로 밀려드는 것만 같았다.
“카리시.”
작은 중얼거림에 차원핵이 즉각 반응했다. 초월적으로 넓어진 시야에 카리시의 모습이 들어왔다.
그녀는 힘겹게 달음박질을 치고 있었다. 재갈을 물고 상반신이 완전히 결박된 채, 칼을 꼬나쥔 인간에게 끌려가는 중이었다.
“……허, 감히.”
고귀한 혈통의 검귀가 짐승처럼 다루어지는 모습에 우쿠루트의 숨이 절로 가빠졌다. 분노로 눈이 벌겋게 충혈되었다. 그의 강렬한 의지에 차원핵이 다시금 응답했다.
우릉, 우르르르-
지진이라도 난 듯 온 땅이 뒤흔들렸다. 사방을 둘러싼 그린스킨들이 꽥꽥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나뒹굴었지만, 우쿠루트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듯 무아지경으로 차원핵을 주물렀다.
꽈르릉!
그가 바라보는 방향의 봉우리가 연달아 무너져 내리고 계곡은 솟아올랐다. 초현실적인 평탄화였다. 채 1분이 지나기도 전에 넓고, 곧고, 완만한 경사로가 뚫렸다. 그 시작은 우쿠루트요, 끝은 카리시였다.
“후으, 후으으.”
늙고 추한 흑요정의 열망이 빚어낸 격변에 경계차원의 모든 이들이 전율했다. 그린스킨들은 물론, 수풀이 우거진 능선을 지나던 중 난데없이 평지로 굴러 떨어진 인간들 역시 경악에 휩싸였다.
뒤집힌 토사와 깨진 바위와 뿌리째 뽑혀 쓰러진 나무들 사이로 날카로운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죽여-!”
눈과 귀에서 피가 줄줄 흘러내렸지만, 우쿠루트는 전혀 개의치 않고 빽 고함을 질렀다.
“명령을 전해! 가서 인간들을 모조리 죽이라고!”
강철거인은 기꺼이 명령을 전했고, 그린스킨들은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그 쩌렁쩌렁한 고함에 복종했다.
“그워어어어!”
“잠든 신들을 위하여!”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오크 전사들이 너른 내리막을 따라 돌격하자, 다른 오크와 고블린들 그리고 저급한 거인들이 그 뒤를 따랐다.
“……피곤하군.”
선두에서 토벌대를 이끌던 가윈은 한숨을 내쉬면서도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작전목표가 달성되었음을.
“전투준비! 적이 온다!”
여전히 시야는 좁았지만, 야만스러운 괴성과 여진이 이어지듯 울리는 지축을 보건대 적들의 주의를 충분하다 못해 넘치게 끌어온 게 분명하다.
“정신 차려! 이게 마지막이다!”
“모조리 쏟아부어!”
격변에 휩쓸려 웬 흙밭에 내팽개쳐진 와중이었다. 그럼에도 토벌대는 지휘관들의 통제에 따라 재빨리 진용을 수습하는 한편, 정말로 모든 것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수렵병들은 얼마 남지 않은 화살을 마기의 안개 너머로 쏘아붙였고, 마법사들은 마지막 공격 주문을 외웠으며, 성직자들은 자신을 불사를 기세로 하얀 불길을 피워 올렸다.
기사와 병사, 용병들 사이에서 학생들이 비장하게 무기를 고쳐쥐며 대열을 정비했다. 청년기사라는 칭호가 민망하던 풋내기들은 고작 며칠 새 전사의 풍모를 갖춘 채였다.
물론 모두가 발전한 건 아니었다.
“비켜, 이 머저리들아!”
망나니 라이오넬은 이번에도 선봉을 양보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그는 한참 대열을 갖추는 동료들을 밀쳐내더니 앞으로 휙 달려 나갔다.
“명예와, 영광으을, 나에게-!”
‘기사왕의 전쟁 치장’을 발동하며 황금빛 안개에 휩싸인 라이오넬이 화살처럼 쏘아졌다. 황금빛 검광이 번쩍이고, 경사로를 따라 목 없는 오크의 몸뚱이가 연달아 굴러 내려왔다.
오스는 내심 혀를 차면서도 서둘러 고함을 내렸다.
“공격한다! 제대 별 간격 유지, 흩어지지 마!”
그간의 경험대로, 대원들은 명령이 내려지기 전부터 저들끼리 뭉치고 있었다.
청년기사들은 조별로, 수렵병들은 랜스별로 대형을 이루었으며,
콜마로스와 테릭스의 가병들 역시 폭주하는 라이오넬을 쫓는 대신 남작들을 따라 대열의 첨단을 이루었다.
불과 몇 호흡 만에 쐐기 모양 진을 갖춘 토벌대가 내리막을 거스르는 돌격을 개시했다.
“공겨어어억!”
“주여, 징벌의 빛을 내리소서!”
달군 나이프가 버터를 가르듯, 삼백 명 남짓한 토벌대가 그린스킨의 물결을 관통하기 시작했다.
최초의 충돌과 함께 백 단위의 그린스킨이 죽어 자빠지는 광경이 펼쳐졌다. 멀찍이서 이를 지켜보던 강철거인이 우루쿠트를 돌아보며 으르렁댔다.
“인간들의 기세가 사납다! 권능을 써라!”
유감스럽게도 늙은 흑요정은 그 요구를 들어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고, 그럴 마음도 없어 보였다. 그는 늘어지듯 차원핵에 몸을 기댄 채 고개를 저었다.
“놈들은 지쳤다. 곧 제풀에 쓰러질 테니 얌전히 있어.”
강철거인의 두 눈이 다시금 불타올랐다.
“끔찍할 만큼 서투른 지휘관! 너는 주인님의 병력을 낭비하고 있다!”
“잔소리 좀 작작 해라. 나는 할 만큼 했어.”
“아니! 네 추한 겁쟁이 짓이 내 발목을 붙잡고 있-”
쾅!
우쿠루트는 저도 모르게 질끈 눈을 감았다. 굉음과 함께 코앞에서 시뻘건 화염이 치솟은 탓이다.
“그으-”
폭발에 직격당한 강철거인이 신음을 흘리며 몸을 돌린 순간, 거구에 후속타가 연달아 꽂혔다.
꽈과광!
‘순풍’으로 가속한 ‘화염구’를 네 차례나 얻어맞은 강철거인이 크게 비틀거렸다.
우쿠루트는 놀라 불티를 털어내던 것도 잠시, 불덩이가 날아든 쪽을 돌아보고는 새된 비명을 흘렸다.
“어느새,”
하늘에서 뚝 떨어지기라도 한 걸까? 불과 3, 40미터 떨어진 곳에 열 명이 넘는 무리가 그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당연하지만, 그들의 정체는 루도가 이끄는 별동대였다. 흑요정 비전의 투명화 주문, ‘스티시의 장막’을 두르고 상대의 감각 끄트머리까지 접근한 끝에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Siora lilidal bon.”
비틀대던 강철거인이 둔중한 뒷걸음으로 땅을 딛기 직전, 한 중년 마법사가 재빨리 주문을 완성했다.
쯔으으웁.
괴상한 소리와 함께 회백색 노이즈가 흐르는 땅 한 조각이 녹아내렸다. ‘급속 용해’ 주문이 작은 늪지를 만들어 낸 것.
푸욱!
강철거인의 왼발이 그 수렁에 깊이 처박히자 별동대원들이 쾌재를 내질렀다.
“좋아, 넘겨 버려!”
동시에 한 용병이 달리던 기세 그대로 장궁을 쏘아붙였다.
콱!
“끄허어어억!”
투창이라고 해도 믿을 기다란 화살이 붉은 안광을 흩뿌리는 눈을 꿰뚫었다. 얼굴을 감싸 쥐는 강철거인을 향해 조악한 안경과 주근깨가 인상적인 소녀가 완드를 겨누었다.
“Durand-am, thulam!”
완드 끝에서 휘몰아친 희푸른 결정 사이에서 흰 얼음창이 솟아났다. ‘서리송곳’은 맹렬히 쏘아져 그대로 거인의 겨드랑이에 박혔다.
“그윽-”
고통에 몸을 굳힌 거인을 향해 루도가 펄쩍 뛰어올랐다.
쓰칵!
그림자도 뿌리칠 듯한 속도로 휘둘러진 장검이 정확히 거인의 목을 그었다.
아름드리 통나무도 단숨에 동강 낼 법한 검격이었으나, 뼈는 물론 피부와 살까지 금속질로 이루어진 강철거인의 목을 잘라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기껏해야 손가락 두어 마디 정도의 깊이가 파였을 따름.
물론 그 충격마저 사라진 건 아니라서, 이미 비틀거리던 강철거인을 넘어뜨리기에는 충분했다.
쿠웅!
“어, 으어-”
5미터가 넘는 강철의 거구가 쓰러지고, 그를 사나운 인간들이 벌떼처럼 덮치는 모습에 우쿠루트는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그는 활로를 모색하려 다시금 차원핵을 향해 손을 집어넣었다.
아니, 집어넣으려고 했다.
“안녕?”
굉음과 비명과 마기로 가득한 환경에 비해 너무나도 밝고 가벼운 음성이었다. 우쿠루트는 본능적으로 허리춤에 매단 쇠뇌를 꺼내 그쪽으로 겨누었지만, 이번에도 한발 늦은 대응이었다.
“꺽,”
드레이크의 가죽으로 만든 단단한 장화가 가랑이에 꽂히자, 우쿠루트는 두 눈을 뒤집으며 뒤로 쓰러졌다.
낡았지만 단 한 번도 쓰인 적 없는 물건을 완전히 박살 내버렸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유프리아는 다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선생님, 여기요!”
기리온 등과 함께 쓰러진 강철거인을 부수던 루도가 휙 고개를 돌리더니 곧장 차원핵과 유프리아를 향해 달려갔다.
“이제 어쩌죠? 어떡할 거예요, 이거?”
루도는 질문에 답하는 대신 차원핵을 향해 곧장 왼손을 내밀었다.
기이잉.
그때 루도의 팔뚝 한복판에서 기이한 문양의 빛이 뿜어졌다. 다만 그가 워낙 빠르게 회백색 덩어리 속으로 팔을 밀어 넣은 탓에 바로 곁에 있던 유프리아도 이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다음 순간, 루도는 마치 원래부터 알고 있었던 것처럼 차원핵을 다루는 방법을 깨달았다. 차원인장을 통해 개화한 능력이, 차원을 넘나드는 자로서의 소양이 이를 가능케 했다.
우우웅.
터지는 빛과 함께 차원핵이 주욱 늘어나며 원반의 형태를 이루었다. 그 너머에서 보이는 푸름과 녹음을 통해, 원반을 본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이 중간계로 향하는 차원문임을 눈치챌 수 있었다.
쿠구구구궁!
차원문을 통해 중간계의 공기가, 마력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들어왔다. 그 사나운 바람이 경계차원을 채우고 있던 마기와 거칠게 뒤섞였다. 삽시간에 차원 전체로 불안정한 진감이 퍼져 나갔다.
“모두 이쪽으로!”
루도가 목이 터져라 고함을 내질렀다.
그린스킨을 비롯한 괴물들은 우쿠루트와 강철거인이 쓰러진 바로 그 순간부터 이미 흩어지는 중이었고, 암흑계의 마력과 중간계의 마력이 뒤섞이며 시야는 점차로 개어갔다. 덕분에 지척에 있던 별동대는 물론이고, 아직 저만치 멀리 있던 본대 역시도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지 눈치챌 수 있었다.
“멍청히 서 있지 말고 뛰라고!”
루도의 피 끓는 고함에 마침내 모두가 달리기 시작했다. 긴 경사로 위에 태양처럼 떠오른 빛의 원반이, 차원문이 유일한 살길임을 아는 것이다.
“루도 선생! 지금-”
“질문을 나중에! 일단 뛰어요!”
“아니, 그게 아니라!”
대원들을 이끌고 급히 달려오던 지휘관들이 루도를 보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런 ”
루도, 아니 포이닉스는 뒤늦게 아차하는 심정이 되었다. 차원인장을 발동하느라 위장이 풀려 버린 것이다.
“멈추지 마! 어서 나가라고!”
그의 당혹스러운 표정을 읽은 오스와 가윈이 얼른 대원들을 돌아보며 재촉했다.
쿠르르릉!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수백 명의 인파가 경사로를 거슬러 내달리고, 그린스킨들이 괴성을 지르며 흩어지고, 차원이 무너져 내릴 듯 울리는 와중이다. 당장 생명이 경각에 달린 판국에, 검술교사의 머리칼과 눈이 시커멓게 물드는 것 따위에 관심을 두는 이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도 모습을 들키는 게 좋을 리가 없어서, 포이닉스는 얼른 차원문 뒤로 몸을 숨겼다.
그때였다.
번쩍.
저 멀리 어디선가, 무너져 내리는 차원의 테두리 어디쯤에서 음울한 빛이 번쩍였다. 그와 함께 흘러들어온 차가운 바람에 포이닉스는 무의식중에 고개를 돌렸다.
번쩍.
“……어.”
봉인이 풀리며 되찾은 기감을 통해, 포이닉스는 이변을 감지할 수 있었다. 중간계의 마력에 중화되던 마기가 밀물처럼 다시금 차오르고 있었다.
그는 저 멀리 어두운 보랏빛 번개가 남긴 잔상을 바라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암흑기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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